우리는 이제 부자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K문화 열풍까지 불어 국가 위상도 높다. 또 손안에 든 스마트폰으로 많은 걸 해결하고 산다. 반만년 역사 중 우리는 지금이 가장 편하고 풍족하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거슬러 더 감추고 밀어내 사라져가는 문제가 있다. 바로 ‘죽음’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죽음이란 그저 개인 각자가 조용히 혼자 정리하는 일이 되었다. 암울하고 쓸쓸한 마침표일 뿐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죽음의 문제마저도 함께 나누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춤추며 노래하면서 떠난 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슬픔을 함께했다. 죽음은 애간장을 녹이는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함께 겪어내는 삶의 여정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장례는 마을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경건한 의식이자 잔치였다.
반만년 최고 영웅의 초라한 장례식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오랜 역사 속 그 수많은 영웅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가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은 그 패배를 철저히 분석하기 위해 이순신을 연구했다. 그러다 이순신을 존경하게 되어버렸다. 일본 어느 사학자는 말한다. 한국인은 이순신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이순신을 가장 모르고 있다고.
그중에서 특히 우리는 이순신의 장례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노량해전 당시 일본군은 전쟁을 끝내자며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 조선을 돕던 명나라 장수도 그냥 도망가게 놔두자고 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다시는 일본이 우리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불빛도 없는 차디찬 겨울 바다 위에서 밤을 새워 싸웠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노량해전을 끝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전후의 혼란 수습이 먼저라 이순신의 장례는 미뤄졌다. 이순신의 유해는 한 달 뒤에나 유족들에 의해 고향 아산 땅으로 올 수 있었다. 이순신이 죽고 15년이 지나서야 유족들이 조정에 간청하여 겨우 직위에 맞는 장례식을 치렀다.
온 나라가 함께 울다
이순신이 떠난 것을 알게 된 백성들은 모두가 통곡했다. 전쟁 중에 백성들은 이순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이순신 근처에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이순신이 죽자 사람들은 자기 부모, 친척들이 죽은 것처럼 울었다.
고향집으로 가는 이순신 운구마차가 지나가면 백성들은 마차를 부여잡고 울며불며 놓아주지 않았다. 저잣거리에 남정네들은 술도 마시지 않았다. 이순신의 부하들은 자기들끼리 사당을 만들어 세웠다. 백성들 저마다 돈을 모아 비석을 만들고 제를 올렸다. 도를 닦던 스님들도 암자를 짓고 그의 넋을 달랬다. 그야말로 온 백성들이 이순신의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아산 영웅을 품다
이순신은 아산에서 살았다.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밥을 나눠 먹으며 아산 땅을 뛰어놀았고 20년 가까이 공부하며 청운의 꿈을 키우고 결혼하고 아들딸 낳으며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산은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반 백년 넘어 매해 ‘아산 성웅 이순신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으며 내년에는 이순신관광체험센터 개관을 앞두고 있다.
아산 이순신 순국제전
아산시가 이순신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지금의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이순신의 숨결을 우리들 각자의 생으로 스미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문제까지도 기꺼이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순신의 죽음’이다. 아산에서 온 국민과 함께 이순신의 장례를 완성하려고 한다. 그것이 ‘이순신 순국제전’이다.
이미 작년 제1회 이순신 순국제전이 큰 호응과 감동을 선사했다. 조선 이래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장례 행렬이 펼쳐졌다. 국내 최고의 장례학전문가,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전통 공예 명인들이 철저한 고증과 애정을 갖고 만전을 기했다.
제2회 이순신 순국제전은 11월 2일과 3일 토요일, 일요일 이틀간 열린다. 특히 올해는 작년과 달리 조선시대 사대부의 장례 행렬 모습을 재연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현대적 기획에도 중점을 두었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많은 문화 체험 행사도 겸한다. 이순신 영화 상영, 제례악, 조선무예, 뮤지컬, 시낭송, 태권도 시범, 진혼무, 대붓 퍼포먼스와 대미의 장식으로 아산시민 약 700명이 모여 대합창을 한다.
아산시민으로 구성된 700인의 행렬대 지원자 중에는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이 보호자의 손을 잡고 와 이순신의 장례를 꼭 참석하고 싶다는 열정을 보여 행사의 의미를 더욱 빛낼 예정이다. 그야말로 시민 모두가 상주가 되고 모두가 하나가 된다. 나의 삶 모든 것을 홀로 생각하고 홀로 해결하며 사느라 고군분투하는 우리들 모두가 영웅들이다. 영웅을 지키는 영웅들의 행사가 될 것이다.
영웅의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지난해 첫 해 이순신 순국제전은 경건하고 새로웠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때 마음까지 칙칙하게 웬 장례 행사냐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기획했다고 조심스럽게 답하고 싶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은 꼼꼼하게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신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기고 있다. 우리는 지금 유례없이 혼자인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굳이 사람이 궁하지 않다. 외로움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며 덜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의 문제만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사람과 함께하기 어려운 지금의 우리들에게 잠시라도 함께 만나자고 제안한다. 제2회 이순신 순국제전에서 지혜롭게 ‘죽음’을 이야기하자. 춤추고 노래하고 걷고 먹고 박수치고 웃으며 한바탕 놀자. 죽음조차 함께 나누어 남은 삶의 생동감을 찾은 우리 조상들의 전통과 지혜를 이어가자. 장례식은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겸손과 성장의 장이다. 백성을 가장 사랑한 최고의 영웅 이순신,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 각자 삶의 진실을 찾아보자. 모두 함께! <저작권자 ⓒ 아산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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