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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조선시대 왕실 기록화 ‘기사계첩’...국보 승격 지정 예고
30일 간 각계 의견 수렴·검토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거쳐 국보 지정
 
이대성기자 기사입력 :  2020/11/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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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터전을 잡은 풍산홍씨 만퇴당 홍만조 후손가에 300여년 세전된 보물 제639호 기사계첩  © 아산투데이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터전을 잡은 풍산홍씨 만퇴당 홍만조 후손가에 300여년 세전된 보물 제639호 기사계첩(1978년 12월 7일 지정)이 지난 10월 29일 국보 승격 지정 예고됐다.

 

기사계첩은 1719년(숙종 45) 59세가 된 숙종이 11명의 신하와 함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제작한 계첩으로 18세기 전반 궁중기록화 및 초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당시 총 12첩을 만들어 기로신 11명에게 반사(頒賜, 임금이 녹봉이나 물건을 내려 나누어 주던 일)하고 1부는 기로소에 보관했으나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총 6점(국내 5, 일본 1)만 알려져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이 국보 제325호(2019년 3월 6일 승격),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이 제638호(1978년 12월 7일 지정)로 각각 지정되어 있으며 다른 기사계첩은 비지정이다.

 

  기사계첩  © 아산투데이

 

아산지역 기사계첩은 당시 기로소에 참석한 만퇴당 홍만조의 종가에 지속적으로 세전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화첩 안에 ‘만퇴당장(晩退堂藏, 만퇴당 소장)’,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라는 글씨가 수록되어 있어 현존하는 기사계첩 중 수급자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례이다. 더구나 내함(內函), 호갑(護匣), 외궤(外櫃)로 이루어진 삼중(三重)의 보호장치까지 보존되어 있어 당시 왕실 반사품의 원형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이처럼 아산지역 기사계첩은 조선시대 기로소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이후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 18세기 전반 궁중 기록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는 점, 제작시기, 제작자, 제작경위 등을 분명히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점, 계첩과 동시에 만들어진 함을 통해 당시 왕실 공예품의 제작 기술 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높게 인정받아 국보승격 지정 예고됐다.

 

한편, 이번 국보 지정 예고된 아산 기사계첩은 30일 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한 후 다음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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